미국 청정경쟁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2025년부터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국내 산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총 2조 7,000억 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0월 28일 ‘미국 청정경쟁법의 국내 파급효과 및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청정경쟁법 도입에 따른 비용 규모를 이같이 추정하고, 탄소세 부담 경감을 위한 정책 시사점을 제시했다.
청정경쟁법안(CCA, Clean Competition Act)은 철강, 시멘트 등 원자재에 탄소세(온실가스 1톤당 55달러)를 부과하는 법으로 2025년 최초 시행한 후 2027년 완제품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2년 6월 미국 민주당이 최초 발의, 2023년 11월 공화당이 동일한 내용의 ‘해외오염관세(Foreign Pollution Fee)’ 법안을 발의했으며, 같은 해 12월 민주당이 청정경쟁법안을 재발의하는 등 양당이 모두 지지해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삼일PwC가 올해 1월 발표한 ESG뉴스레터에 따르면 청정경쟁법안 최초 발의 당시 미국 제조업은 탄소 절감을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부어 탄소집약도를 전 세계 평균 50% 미만으로 낮췄지만, 중국은 3배, 인도는 거의 4배 가까이 높은 탄소집약도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에 美 상원은 국가별 탄소집약도 차이로 인해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만큼 미국에 수입되는 제품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청정경쟁법이 시행되면 미국과 원산지 간 탄소집약도 격차에 단위당 탄소가격을 곱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된다. 국가 단위 탄소집약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을 의미하는데,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미국의 탄소집약도는 각각 0.14, 0.11이다.
탄소세는 미국과 한국의 탄소집약도 격차, 탄소가격, 적용비율을 수출중량에 곱한 값에 의해 결정된다. 즉 탄소집약도 격차가 1, 탄소가격이 톤당 55달러, 적용비율 1일 때 한국 기업이 100톤을 미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 수입업자는 5,500달러의 탄소세를 납부해야 한다. 결국 수입업자는 한국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게 되고 이는 국내 기업에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경협은 청정경쟁법이 도입되면 내년부터 2034년까지 10년간 총 2조 7,000억 원의 탄소세 비용이 유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적용 범위에 따라 원자재에는 1조 8,000억 원, 완제품에는 9,000억 원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석유·석탄제품(1조 1,000억 원), 화학제조업(6,000억 원)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의 對美 수출액은 2016년 이후 상승하는 추세로 2023년 기준 총수출액의 18.3%를 차지한다.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자동차부품, 전기전자, 일반기계, 반도체, 철강 등이다. 청정경쟁법이 완제품으로 확대 적용되기 이전 대상 품목에는 석유제품(HS코드 제2710호), 환식탄화수소(HS코드 제2902호) 등이 해당된다. 이는 對美 상위 10대 수출품목에도 포함되는 품목들이다. 한경협은 對美 소비재 수출 비중은 2023년 기준 약 30%로, 중국(6.7%), ASEAN(5.2%), EU(13.0%)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2027년 탄소세가 완제품 대상으로 부과될 경우 유의미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탄소세 비용은 2025년 1,449억 원으로 시작하지만 2034년에는 3,189억 원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한국의 탄소집약도 개선 속도는 주요국보다 저조해 국내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한국 탄소집약도 개선 속도(2.4%)는 미국(4.9%), 일본(2.7%) 등보다 저조하다. 삼일PwC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 무상할당비율을 고려하고 원산지에 따른 가중치를 두고 있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청정경쟁법이 기업에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삼일PwC 소주현 파트너는 “EU CBAM보다 더 광범위하게 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며 전자제품, 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한국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도입 시기가 2025년 1월 1일로 계획돼 있어 그야말로 기업에는 ‘발등의 불’이다. 다만 청정경쟁법은 일부 최빈국의 수출품은 면제, 수입국의 정책 및 활동 수준에 따른 면제 등 제도 시행에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한경협은 기업들의 비용 경감을 위해 발전부문의 무탄소에너지 전환을 통해 탄소집약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발전부문의 무탄소에너지 전환은 산업, 건물, 수송 등 여타 부문의 주요 탈탄소화 전략인 전기화의 선결 조건으로 알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까지 연·원료에너지를 기존 에너지원에서 전기로 변환시키는 전기화(electrification)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는 약 24.3%에 달한다. 국가 단위 탄소집약도 개선율에 따른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연간 탄소집약도를 1% 개선하면 미국 탄소세 비용은 4.9%(약 88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협은 에너지원의 균형적 보급, 국가 계획 내 전기화에 따른 전력수요의 충분한 반영 등 무탄소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청정경쟁법은 탄소클럽(carbon clubs) 조항을 통해 원산지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명시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 탄소세 (일부) 면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즉 상대국에서 탄소가격제로 청정경쟁법과 유사한 수준의 요금을 부과한다면, 탄소세를 면제해 이중부담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한경협은 정부가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 상향 추이와 탄소가격 현황 등 탄소가격제 운영 현황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협상력을 사전에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수입국의 탄소집약도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경우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한 탄소집약도를 적용해 탄소세를 산출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한경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출범한 탄소감축포럼(IFCMA)의 탄소집약도 연구 결과가 탄소세 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한국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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