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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4주차_관세사칼럼_청일전쟁 직전 조선해관의 상황(4)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22-11-25 09: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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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22-11-25 09:13:37

(8) 1886. 8. 12. 메릴이 하트에게 보낸 제19호 보고서


삼복더위 중 정치 분위기 역시 답답한 상황이었음. 조선정부와 이탈리아는 이미 조약을 체결하여 문서를 교환 하였음. 조선을 떠난지 이미 18개월이 지난 민영익이 문득 몇 일전 귀국하였음. 우선 외무서 독판(현 외교부장관;역주)을 담당하다가 곧바로 이를 사직하였고, 다시 조선 우영사 겸 전환국13) 총판(업무총괄)을 담당하게 되었음. 이 자는 재능은 없으나, 권력이 무한한 자로서 만약 그 자리에 계속 재임할 수 있다면 혁신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자임. 일본 신문에 김옥균의 상소 전문이 실렸는데, 귀하께서 대략 724일을 전후로 일본에서 받은 소포에서 이미 볼 수 있었을 것임. 이 사건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문건 내의 En Si Gai바로 이곳의 위안스카이(원세개)를 가리킴. 원세개는 2주 전 리중탕(中堂)에게 조선이 러시아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러시아공사는 전문을 받자마자 이에 응하였다는 내용의 보고를 올렸음. 리중탕(李中堂)은 데니(O.N.Denny)(TONY)에게 이를 조사하도록 하여 원세개의 보고 가 사실이라면 이를 반드시 제지하라고 지시하였고, 데니(O.N.Denny)(TONY)는 원세개의 보고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보고하였음. 데니(O.N.Denny)(TONY)는 이러한 유언비어는 아마도 거문도를 계속 점거하고 있는 자(영국 함대;역주)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사료된다고 리중탕(李中堂)에게 보고하였음.

국가의 중요한 정책에 관여할 방법이 없어 데니 (O.N.Denny)(TONY)입장으로서도 뚜렷한 진척을 보일 수 없게되었음. 그저 거문도를 계속 점거하고 있는 자들에게한 항의와 더불어 귀환(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성과도 없었음. 이렇게 대접해서는 데니(O.N.Denny)(TONY) 또한 자신의 위치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것임. 만약 그에게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한다면 그는 떠날 것으로 보임.


(9) 1886. 8. 19 메릴이 동해관(연태해관) 세무사(세관장) 무어헤드(R. B. Moorhead)에게 보낸 서한


현재 한성(서울)에서 중대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였음.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조선을 러시아의 보호 하에 두려고 하는 음모를 기도했다는 것을 이유로, 조선 주재 청나라 고관들의 행위가 빚어낸 결과라 하겠음. 이미 국왕(고종)이 러시아에 대한 이러한 시도에 대해 부인하였고, 러시아 공사도 전혀 이러한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였음. 그러나 원세개는 오히려 옥새가 찍힌 조선국왕이 러시아의 보호를 요청하는 문서를 발견하였다고 성명을 발표하였음. 그는 즉시 톈진에 군함과 군부대를 조선으로 보낼 것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고, 이러한 행위는 조선국왕과 정부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음. 지금 상황에서 조사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원세개는 이미 조선국왕이 이러한 사실을 부인한 것을 이미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문서 역시 날조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음. 원세개는 조선국왕에게 음모를 꾸민 친러파 4인의 관원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여, 조선국왕 또한 이를 윤허하였음. 이들에게는 추방이 언도되었고, 더욱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음. 그들은 모두 국왕의 심복으로서 외국인과 수시로 접촉이 가능한 자들이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그들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국왕도 강경한 압박을 받고서야 처분을 하도록 하였음. 소식에 따르면 내가 간절히 바랐던 바와 같이 원세개는 청나라에 요청한 파병요구를 취소하였다고 한음. 지금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온다는 것은 조선사람들을 공황과 혼란, 그리고 동요하게 만드는 것으로 현 조선정부가 소란에 빠져 무정부상태가 되어 매우 번거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함. 이 사건의 내막은 수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나로서는 이를 해석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임. 내가 귀하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귀하가 오로지 오시퍼(Osciper)호 함장에게 현 국면의 엄중함을 설명하여 즉시 그를 불러들이게 하기 위함이었음. 아마도 그가 정식으로 당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설사 그가 아직 요청을 받지 않았더라도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어렵지 않도록 설명하기 위함임. 현재 인천에는 한 척의 유럽과 미국의 군함조차 없어 우리는 전보를 사용할 방법이 없음.

따라서 본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하여 톈진으로 파견된 특사인 민영익이 탑승한 군함편으로 귀하에게 이 전문을 보내는 바임


바라건대 즉시 본 사건에 대한 핵심을 총세무사(하트)에게 보고해주기 바람. 내 지난번 총세무사 보고시에는 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쓰지 않았음. 예상컨대 총세무사는 이미 소문으로 본 사건에 대하여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을 것임. 현재로써는 간단하게나마 이를 작성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 드리는 바임.



(10) 1886. 8. 20 메릴이 하트에게 보낸 제20보고서


812일 이미 보고한 바와 같이, 조선국왕이 러시아에게 정식으로 보호를 요청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데니(O.N.Denny)(TONY)이 소문의 근거가 어디인지 조사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음. 현재에도 이 소문이 누설된 사태에 대한 조사활동이 진행되는 중임. 음모가 발각된 후, 원세개가 즉시 행동에 나선 탓에 이 일이 더 큰 소동으로 빚어지게 되었음. 나는 원세개가 어떻게 음모의 단서를 포착하게 모르겠으나 국왕이 얼마나 이와 관련이 있는지도 알지 못함.그러나 원세개는 러시아 공사가 본국 정부에 전했다는 조선정부의 보호요청 문건의 사본을 내세웠음. 그가 말하길 원본 상에 조선 국왕의 옥새가 찍혀있다고 주장했음. 원세개는 즉시 국왕에게 이러한행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가리키며 국왕과 궁정을 놀라게 하였음. 그는 또한 즉시 군함과 군대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음.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는 이를 공개하여 국왕을 겁박하는동시에 퇴위시키고, 대원군에게 정권을 넘겨주도록 하였을 것임. 대원군은 원세개의 보호 아래에 있으며, 원세개와 만남을 한 사실도있음. 원세개는 거칠고 오만하여, 모든 일에서 함부로 세도를 부리고 있음. 국왕자신은 이 음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선을그어 답변했음. 하루 이틀 지난 후, 원세개가 국왕의 답변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무래도 증거라고 내세웠던 문건이 조작된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임. 그러나 어쨌든 이 일은 몇몇인재들의 체포를 통해서야 결말을 지을 수 있었던 바, 4명의 관원을 추방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이 4명이 금번 음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음. 그러나 이 4명은 모두 외국인들과 가까운 사이로, 한명은 데니(O.N.Denny)(Tony), 한명은 미국 대사관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또 다른 한명은 러시아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자였음. 그들이 외국인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을 뿐임에도, 원세개는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유일한 사람이었음. 그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특명사절단을 톈진(천진)에 보내어 조선국왕이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청나라에 충성 표시를 하도록 요구하였고 그대로 결정되었음. 민영익을 수석으로 한 사절단이 오늘 새벽 이미 출발하였음. 모두들 원세개가 육해군의 파병을 철회하였다고 믿고, 나 역시 현재의 국면에서 잠시 평안한 시기가 도래하리라 생각하였음.이번 사건의 내막에는 아직 수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남아있음. 주요 쟁점은 조선국왕이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하였는지의 여부였는데, 정작 러시아 공사는 이에 대해 부인하였음. 그러나 데니(O.N.Denny)(Tony)는 내게 원세개가 확보한 그 문건이 러시아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하였고, 국왕 또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금번 사건은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임. 이는 서울에 있는 청나라대표의 독단적이고 거만한 처사에 따른 당연한 결과임. 국왕과 약간 애국 자존적인 조선관리들은 자연스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굴욕이라 생각했을 것임.

이러한 정서가 존재하는 가운데, 더구나 청나라 조선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이 거문도에서 퇴거할 것을 요청함에 있어서 힘을 실어주지 못했음. 이러한 일들을 이유 1885년에 좌절된 친러운동의 선동과 일련의 유력인물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음. 사람들은 당연히 지난 친러운동의 주모자였던 묄렌도르프가 금번 사건과 아무 관계없다는 것에 의심을 갖게 되었음.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그에 대한 소문이 매우 모호하고 증거조차 없는 것이라고 줄곧 들어왔음. 현재 사태가 변화 또는 중지된 덕에 청나라은 위력을 내세워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 만약 러시아 정부가 정말로 조선의 보호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또 이러한 소문이 진실이었다면, 러시아 정부는또 다시 우롱당하고 아무 항의조차 하지 않으며 그만 두었을 까? 의문이 듦


만약 청나라에서 어떤 적합한 인물이 파견되었더라면, 또한 그가 주재 기간중 리중탕이 조선에 바라는 바와 의견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었다면, 금번 같은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

한편으로는 조선 국왕이 식견이 있었다면 용기를 내어 리중탕에게 원세개의 태도와 행위에 대해 알리고 소환하도록 요청하고, 청나라측이 이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조선 국왕이 만족할 수 있었을 것임. 지금 사람들은 현재 난관과 관련 어렴풋이 외국 군대가 들이닥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음. 각지에서도 별다른 동정이 없으며 만약조선인들 스스로 내부 분열하거나 갈등이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만 않는다면 사람들이 우려할만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됨. 전보 업무가 중단되어 전달이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연태와 나가사키에 현 국면에 대한 보고를 발송하여 군함을 인천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 바임. 현재 인천에는 미국과 유럽의 군함이 한척도 없는 상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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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전환국: 고종 20(1883) 설치한 화폐 제조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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